우리가 사랑한 새벽배송의 5가지 불편한 진실
-建功立業者 多虛圓之士(건공입업자 다허원지사) 『채근담』-
-성공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원만한 사람이다.-
-“사업에 성공하고, 공을 세우는 사람은 대부분이 허심탄회하고 원만한 사람이다.”-

성공하는 기업의 조건, ‘원만함’과 ‘집요함’ 사이
고전 『채근담』은 “건공입업자 다허원지사(建功立業者 多虛圓之士)”라 말한다. 사업에 성공하고 공을 세우는 사람은 대부분 마음이 비어 있고 성품이 원만하다는 뜻이다. 이 지혜는 성공하는 이의 특징으로 ‘원만함’을, 실패하는 이의 특징으로 ‘집요함’을 제시한다.
원만함이란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위기관리 능력을 의미한다. 반면 집요함은 자신의 생각에만 고착하여 변화하는 정세를 읽지 못하는 완고함이다. 이 고전의 통찰을 오늘날 한국 유통 시장의 혁신 아이콘, 쿠팡의 사례에 비추어보자. 새벽배송이라는 거대한 성공 신화를 쓴 쿠팡의 전략은 과연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원만함’의 결과인가, 아니면 이윤 모델에만 매몰된 위험한 ‘집요함’의 산물인가?
1. '93%의 역설': 절박함의 비명은 어떻게 선택으로 포장되는가?
쿠팡 배송 노동자의 93%가 새벽 배송 금지에 반대한다는 통계는 언뜻 노동자들이 스스로 이 시스템을 원한다는 강력한 증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수치는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절박함의 비명’이다.
주간 배송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낮은 임금 구조가 그들을 위험한 야간 노동으로 내몰고 있다. 한 노동자의 증언은 이 구조적 문제를 명확히 드러낸다.
"최저임금으로 먹고 살 수 없으니 목숨 걸고 새벽 배송을 하게 된다."
현장을 모르는 이들은 단순히 “새벽 5시에 배송을 시작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말하지만, 이는 현실을 외면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 배송 전 상품을 싣고 내리는 ‘상하차’ 작업에만 평균 1시간 24분(84분)이 소요되는 현실에서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제안이다. 결국 93%라는 숫자는 노동 환경의 질을 선택할 권리가 아니라,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기반한 ‘선택지 없는 선택’의 결과물이다.
2. '알고리즘 감옥': '클렌징'과 '타임어택'이라는 보이지 않는 채찍
노동자들이 위험을 감수하며 새벽길로 나서는 배경에는 쿠팡이 설계한 보이지 않는 감옥, 즉 알고리즘 통제 시스템이 있다. 그 핵심 기제는 ‘클렌징(Cleansing)’과 ‘타임어택(Time Attack)’이다. ‘클렌징’은 배송 수행률이나 마감 시간을 지키지 못한 노동자의 배송 구역을 회수하는 제도로, 사실상 해고와 다름없는 위협으로 작동한다.
이 시스템은 노동자들을 0시부터 7시까지라는 가혹한 마감 시간에 맞추기 위한 극심한 속도 경쟁으로 내몬다. 국제암연구소(IARC)가 2A군 발암물질로 지정한 야간 노동의 위험성이나 인간의 생리적 한계는 이 알고리즘 앞에서 고려되지 않는다. 과로로 숨진 고(故) 정슬기 씨가 관리자의 독촉에 보내야 했던 메시지는 이 시스템의 비인간성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관리자의 "달려주십쇼"라는 재촉에 그는 이렇게 답해야만 했다.
"개처럼 뛰고 있다"
3. '책임 회피의 구조': 직접고용에서 특수고용까지
앞서 언급한 ‘알고리즘 감옥’은 쿠팡이 수년에 걸쳐 체계적으로 구축한 책임 회피의 구조 위에서만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과거 직접 고용 형태의 ‘쿠팡맨’ 시절과 달리, 쿠팡은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 하청 대리점, 그리고 개인사업자 신분인 특수고용직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간접고용 구조를 완성했다.
이 구조적 전환을 통해 쿠팡은 책임을 최소화하고 비용을 극대화했다. 시장 진입 초기 건당 약 2,500원에 달했던 배송 단가는 현재 야간 900원, 주간 700원 수준으로 급락했다. 반면 노동 강도는 심화되어, 노동자의 하루 평균 배송 물량은 388건으로 전년 대비 8.1%나 증가했다. 더 많은 일을 더 적은 돈을 받고 하게 된 것이다. 더욱 교묘한 것은 법적 회피다. 쿠팡은 자신을 ‘배송 사업자’가 아닌 ‘플랫폼’ 혹은 ‘물류업체’로 규정하며, 택배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과 2021년 사회적 합의의 적용 대상에서 벗어난다. 이 구조 속에서 쿠팡은 노동자가 사망할 때마다 다음과 같은 태도를 반복할 수 있었다.
"우리 소속 근로자가 아니다"
4. '150억 원의 행방': 한국에서 번 돈으로 미국에 로비하는 기업
쿠팡은 지난 4년간 미국에서 1,076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5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로비 활동에 사용했다. 이 자금은 한국 소비자와 노동자의 땀으로 벌어들인 이익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이 돈은 어디에 쓰였을까?
개 조선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쿠팡의 핵심 로비 논리는 “쿠팡을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술 기업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전체 매출의 90% 이상을 한국에서 거두면서도, 정작 위기 상황에서는 자신을 ‘미국 기업’으로 포장하여 한국 정부의 규제를 피하려는 전략적 위선을 드러낸다. 이 150억 원의 용처는, 배송 단가가 2,500원에서 1,000원 이하로 추락하던 바로 그 시기에 집행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쿠팡은 국내 노동 환경 개선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미국 정치권 로비에 천문학적 자금을 사용했다.
5. '54조 원의 공포 마케팅': 경제 논리 뒤에 가려진 생명의 가치
최근 한국로지스틱스학회는 새벽 배송이 금지될 경우 연간 54조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커머스와 소상공인 매출 감소 등을 근거로 한 이 주장은 규제에 대한 강력한 반대 논리로 활용된다.
하지만 이 거대한 경제적 손실 주장 이면에는 의도적으로 누락된 ‘인간의 비용’이 있다. 54조 원이라는 숫자에는 노동자의 과로사, 산업재해로 인한 막대한 사회적 비용, 파괴된 가족 공동체의 가치, 야간 노동으로 서서히 파괴되는 건강의 가치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기업의 이익을 국가 경제 전체의 이익과 동일시하며 노동자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가리는 공포 마케팅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원만한’ 기업이라면 경제적 충격을 앞세우기보다,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모델을 찾기 위한 유연한 대안을 먼저 제시했어야 한다.
당신의 '새벽 배송'은 무엇에 투표하고 있는가?
서론에서 언급한 『채근담』의 지혜로 돌아가 보자. 변화하는 정세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원만함’이라면, 쿠팡의 전략은 이윤 모델에만 고착된 ‘완고함’에 가깝다. 노동자의 생명권과 사회적 합의라는 시대적 요구를 외면한 채, 알고리즘 통제와 해외 로비에 의존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성공 모델이 될 수 없다.
이제 논의의 초점은 우리, 소비자에게로 향한다. “누군가의 생명을 담보로 얻은 편리함은 필요 없다”는 한 시민의 목소리는 이 문제의 핵심을 찌른다. 우리의 편리한 클릭 한 번이 결국 어떤 시스템을 지지하고 유지시키는 투표 행위가 되는 것은 아닌가?
아침 문 앞에 놓인 택배 상자를 마주할 때, 우리는 그 편리함의 무게에 대해 한 번쯤 성찰해야 한다. 여러분의 새벽 배송은 과연 무엇을 위한, 그리고 누구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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