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복은 정의의 수의가 되었나?
채 상병 특검 영장 기각, 사법 쿠데타의 5가지 증거

진실을 향한 열망이 벽에 부딪혔을 때
한 젊은 병사의 억울한 죽음, '채 상병 사망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려는 국민적 열망은 거대했다. 그러나 그 열망은 차가운 법원의 문턱에서 좌절되었다. 국민의 마지막 보루여야 할 사법부가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김계환 전 해병대 사령관, 유재은 전 법무관리관, 박진희 전 군사보좌관, 김동혁 전 검찰단장 등 핵심 피의자 5명 전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일괄 기각하며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한 것이다. 이는 국민이 목도한 참담한 광경이었고, 대한민국 사법 정의에 대한 사망 선고와 다름없었다.
1. 인정하면서 부인하는 모순: "사실은 소명되나, 다툼의 여지 있다"는 해괴한 논리
서울중앙지법 정재욱 영장전담판사는 영장을 기각하며 모순으로 가득 찬 논리를 내세웠다. 그는 결정문에서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어느 정도 소명된다"고 명시했다. 이는 특검이 제시한 증거, 즉 대통령실의 격노와 그에 따른 수사 외압의 실체가 분명히 존재함을 법원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럼에도 법원은 "주요 혐의 관련 법리적인 면에서 다툴 여지가 있다"는 이유를 들어 핵심 피의자 전원을 풀어주었다. 기본적인 범죄 사실이 소명되었음에도, 사실상 모든 형사 사건에 적용 가능한 만능 방패인 '법리적 다툼'을 내세워 구속의 필요성을 부정한 것이다. 이는 수사를 거부하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다. 사법부가 스스로의 책무를 포기한 명백한 직무유기이자, 진실을 열망하는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2.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기묘한 인사: '영장 기각' 판사들의 전략적 배치 의혹
이러한 해괴한 논리가 단지 한 판사의 일탈로 치부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 하에서 반복되는 패턴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내란 방조 혐의,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내란 관련 핵심 인물들의 구속영장이 같은 논리로 줄줄이 기각된 바 있다.
이러한 패턴 뒤에는 전략적인 인사가 있었다는 의혹이 짙다. 이번 기각을 주도한 정재욱 부장판사를 포함한 영장전담 판사 3명은 모두 2024년 2월, 수원지법에서 서울중앙지법으로 동시에 발령받았다. 이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인사권 행사가 계엄 이후 내란 사건 수사를 방해하기 위한 계산된 배치였다는 의혹을 낳고 있다. 이 이례적인 인사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영장전담 판사직은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기 있는 보직이 아닌데, 수원지법 판사 3명이 동시에 영장전담 판사가 된 것은 법원장이 사무분담위원장에게 사주를 했거나, 외부 압력이 있었던 것"
3. 증거인멸 정황은 차고 넘치는데...: '방어권 보장'이라는 기만적 명분
전략적으로 배치되었다는 의혹을 받는 사법부는 예측된 결과를 내놓았다. 특검은 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정황을 상세히 제시했다. 수사 과정에서 상당수가 사건 당시 사용하던 휴대전화를 교체했고, 서로 입장과 진술을 맞추는 행위를 지속했다. 일부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다른 피의자들이 그에 맞게 진술하도록 유도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명백한 증거인멸 정황에도, 법원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 광범위한 수사를 통해 이미 상당한 증거가 수집된 점"을 오히려 구속이 불필요한 근거로 삼는 역설을 보였다. 증거가 충분하다는 것은 유죄 입증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자, 피의자가 남은 증거마저 인멸할 동기가 충분하다는 뜻이다. 이는 방어권 보장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된, 권력을 향한 사법부의 비굴한 투항이라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구속 수사는 증거인멸과 말 맞추기를 차단하고 실체적 진실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 절차이다. 핵심 피의자들이 버젓이 활보하는 상황에서 공정한 재판이 가능한지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4. 결국 목표는 하나: '윗선'으로 향하는 수사의 칼날 부러뜨리기
이 모든 비상식적인 판단이 향하는 목표는 단 하나, 바로 수사 외압 의혹의 정점이다. 특검은 핵심 고리인 이종섭 전 장관을 구속한 뒤, 이를 발판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 수사를 확대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전 장관의 구속이 무산되면서 '윗선'으로 향하는 수사 동력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법원의 판단 기준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계산되었는지는 다른 피의자들의 사례에서 더욱 명확해진다. 법원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발부했다. 임 전 사단장은 부하들에게 진술 회유를 종용하고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해서야 휴대전화 비밀번호를 제공하는 등 증거인멸 정황이 명확했다. 그러나 이와 대조적으로, 같은 혐의를 받던 최진규 전 해병대 1사단 11포병대대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했다. 권력의 핵심부로 향하는 인물들은 모두 풀어주고, 그 아래 실무자들은 선별적으로 구속하는 이중적인 잣대는 법원의 판단에 일관성이 아닌, '의도'가 있음을 보여준다.
5. 무너진 정의의 저울: 사법 쿠데타, 두 번째 총구는 민주주의를 겨눴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법리 판단의 오류를 넘어 '조직적인 사법쿠데타'로 규정되고 있다. 조희대 대법원장 체제의 사법부는 이미 정치적 중립성을 잃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조 대법원장은 과거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소부 배당 하루 만에 전원합의체로 직권 회부하며 초고속 재판을 진행해, 사법부가 정치적 결론을 내렸다는 비판을 자초한 바 있다.
이러한 행보에 법원 내부에서조차 붕괴를 경고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김주옥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조 대법원장을 "반이재명 정치투쟁의 선봉장"이라고 직격하며 그의 사퇴를 촉구했다. 그는 사법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되물었다.
"헌법이 말하는 법원 '독립'은 법원이 자기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다. 스스로 권력이 되란 뜻도 아니다. 대법원장은 국민의 대표자로 이뤄진 국회에서 헌법상 법원 '독립'을 왜곡했다"
법원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오늘 우리가 목격한 것은 단순한 영장 기각이 아니다. 이는 치밀하게 연결된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다. "사실은 소명되나 다툴 여지가 있다"는 모순적 논리 뒤에, 의혹으로 가득한 전략적 인사가 있었고, 그 결과 증거인멸 정황은 노골적으로 무시되었으며, 결국 '윗선'을 보호하기 위한 수사 방해라는 목적을 달성했다. 이 모든 조각이 맞춰질 때, 우리는 이것을 '사법 쿠데타' 외에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 법원이 한 젊은 병사의 죽음과 진실을 외면하고, 거대한 권력의 방패막이를 자처한 것이다.
오늘 법원이 기각한 것은 단순한 영장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사법 정의의 사망 선고이자, 진실을 향한 국민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채 상병의 죽음 앞에서, 무너진 정의 앞에서, 우리는 묻는다. 법원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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