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없는 고기, 이름 뺏길 위기?
-식물성 식품의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유럽연합(EU)이 또다시 식물성 제품의 '고기 명칭' 사용을 단속하려 한다. 2020년, '버거', '소시지', '스테이크' 등 채식 및 비건 대체식품에 대한 명칭 사용 금지 안건(수정안 165호)이 부결된 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베이컨', '쇠고기', '닭고기', '드럼스틱', '브리스킷'과 같은 29개 '고기 관련 용어'들을 금지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마치 90년대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논쟁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소비자의 혼란? 진짜 문제는 따로 있다
EU 집행위원회의 핵심 우려는 소비자들이 식물성 베이컨을 실수로 실제 베이컨으로 착각하고 구매하는 일을 막는다는 것이다. 육류 산업 역시 식물성 부문이 자신들의 매출을 '훔쳐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현실에서 이런 일이 얼마나 자주 일어날까? 물론 통제된 스크린 기반 환경에서는 소비자들이 제품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실제 슈퍼마켓에서는 대부분의 소비자가 식물성 제품과 일반 육류를 쉽게 구별한다.
진정한 육식 애호가가 실수로 식물성 닭고기를 집어 들었다고 해도, 그것이 일회성 실수일 가능성이 높지, 식습관의 변화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우리 2030 세대에게는 '이것은 닭고기가 아니다'라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THIS Isn’t Chicken' 같은 재치 있는 브랜드명이 오히려 더 솔직하고 매력적이다.
이름 전쟁 뒤에 가려진 진짜 위험: 알레르기!
필자의 전문적 견해로는, 이러한 '이름 전쟁'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시급하게 다루어져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알레르기이다. 알레르기에 취약한 소비자가 실수로 일반 쇠고기 대신 비건 쇠고기 대체품을 구매했을 경우, 특히 식물성 제품에 흔히 사용되는 콩, 글루텐 또는 견과류 성분에 아나필락시스 반응을 일으킨다면, 이는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식물성 육류 대체품이 스스로를 육류와 차별화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필자는 식물성 육류 대체품이 슈퍼마켓의 독립된 진열대에서 판매되고, '식물성', '비건', '채식', '고기 없는' 등의 문구로 명확하게 라벨링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사푸토 데어리(Saputo Dairy)의 비탈리테(Vitalite) 버터 대체품이 '유제품 프리', '글루텐 프리', '콩 프리', '유당 프리'를 명확히 표기하고, 네슬레 가든 고메(Nestlé Garden Gourmet)의 '센세이셔널 버거'가 '비건'임을 명확히 하고 제품 전면에 '콩 단백질 함유'를 두 번이나 강조하는 것, 이런 노력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바이다. 이는 단순히 마케팅을 넘어 소비자의 생명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장 점유율 침해? 식물성 시장의 현실은...
식물성 대체품이 기존 육류 산업의 '후광'을 이용하고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식물성 브랜드가 육류 소비자를 유의미하게 빼앗아간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럴까? 전기차 제조업체가 '엔진', '마력', '토크'와 같은 기존 내연기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 것처럼, 식물성 제품에도 숨 쉴 공간을 주어야 한다.
솔직히 말해, 식물성 부문은 육류 시장 점유율을 거의 잠식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초가공' 및 '영양'에 대한 우려로 소비자 신뢰가 떨어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부 기업은 문을 닫았고, 다른 기업들은 겨우 버티고 있어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들이 진입할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식물성 제품의 '고기 명칭'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어려움에 처한 산업을 더욱 짓밟는 격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육류 없는 제품군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품목 중 일부는 애초에 고기를 모방하려 하지도 않으며, '고기' 관련 용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템페나 두부 같은 제품들이다.
심지어 세계 최대 육류 회사인 JBS조차 비베라(Vivera)와 더 베지테리언 부처(The Vegetarian Butcher) 같은 식물성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이는 결국 시장의 흐름과 소비자 선택의 자유를 존중해야 함을 시사한다.
투명한 라벨링, 우리의 똑똑한 소비를 위한 길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식물성 제품 제조업체들에게 숨 쉴 공간을 주어야 한다. 동시에, 그들은 '비건', '식물성', '고기 없는' 등의 용어로 자신들의 **비육류성(non-meatiness)**을 계속해서 명확히 알리고, 특히 주요 알레르기 유발 물질은 제품 전면에 크고 명확하게 표기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합리적인 합의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소비자들은 명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가치관과 건강을 고려한 현명한 선택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이름 전쟁에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투명한 정보 제공과 혁신을 통해 더욱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 식탁을 만들어가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얄팍다식 & 경제 > 식품 정보(스타트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체육 시장, 지속가능성을 넘어 '건강'으로 진화하다: (1) | 2025.09.17 |
---|---|
혼돈의 시대, 푸드테크 창업자가 알아야 할 '위기의 본질' (1) | 2025.09.09 |
식음료 산업의 3가지 대변혁 (7) | 2025.08.28 |
'고기 맛'을 벗어던진 대안식품, 진짜 혁신은 지금부터다 (3) | 2025.08.26 |
2025년 F&B 시장, '모순된 욕망' 속에서 기회를 찾아라 (2) | 2025.08.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