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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1부)

AI독립군 2010. 5. 24. 06:00

(창비 2008년 겨울 호 게재)

        세계 금융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1부)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1. 세계 금융위기의 전개

 

세계경제는 금융위기의 격랑에 휩싸여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에서 비롯한 미국발 금융위기가 2007년부터 표면화되어 2008년 가을에 접어들어선 마침내 유럽전역에까지 위기가 파급되면서 세계적 차원의 금융위기로 발전하였다. 국가부도의 위기에 직면하는 경우도 속출해 선진국인 아이슬란드와 후진국인 헝가리,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등이 거기에 해당한다. 초고속성장을 구가하는 중국, 인도와 같은 신흥경제는 위기 초기엔 그 영향에서 벗어나 있다는 비연동(de-coupling)론이 유행했으나 이제는 그들도 성장둔화를 피할 수 없다는 재연동(re-coupling)론이 부상하고 있다.

 

 

 

 금융위기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각국 정부는 본격적인 개입에 나서게 된다. 미국은 7천억 달러의 대규모 구제 금융을 조성키로 하였다. 그리고 처음에는 그 구제금융을 부실자산의 매입에 충당하기로 했으나, 이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은행의 부분적 국유화라는 금융사회주의(?) 수단까지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가 기업 등에서 CP(단기자금 조달을 위한 기업어음)를 직접 매입하는 일도 진행되고 있다. 유럽에서도 서브프라임 관련 채권을 매입한 금융기관의 부실 등이 대두되면서 비슷한 대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금융위기의 발단인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란 프라임 모기지나 알트-A 모기지에 비해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 계층의 주택소유를 확대하기 위해 시작된 주택담보대출이다. 이는 1980년대 말 이후 중산층의 주택 소유가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개발된 일종의 신흥시장인 셈인데, 초저금리 기조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과 증권화(securitization)를 통한 위험회피 수단의 발전에 의거해 무분별한 대출이 이루어졌다. 심지어는 닌자(Ninja: no income, no job or assets) 계층에까지 대출이 제공되었다.

 

 

초저금리 기조는 2000년 말 IT거품이 꺼지면서 이에 따른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연방기금 금리를 6.5%에서 1%까지 떨어트린 것을 말한다. 이 결과 돈이 주택시장으로 몰리고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보급되면서 주택가격은 폭등하였다. 주택가격이 상승하는 한에선 부실대출도 표면화되지 않았다. 그러나 투기적 거품은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며, 2006년을 고비로 주택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위기로의 질주에는 자산유동화와 파생상품이라는 금융혁신 즉 금융시스템의 변용도 작용하였다. 자산유동화란 주택담보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의 대출채권을 근거로 새로운 금융상품인 주택저당증권(MBS: mortgage-backed securities)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전매하는 증권화 과정을 지칭한다. 이를 통해 원래 대출을 시행한 은행에서 대출에 따른 위험이 분리되고, 또한 은행은 대출자금을 묶어두지 않고(유동화) 회수하는 것이다. 이런 증권화가 주택대출뿐만 아니라 신용카드대출 등 갖가지 대출에 대해 여러 단계로 진행되고, 여기에 채권부도의 위험을 보장해주는 CDS(credit default swap)와 같은 파생상품의 발전이 병행하였다.

 

 

 

이러한 금융혁신은 기존의 은행중개 금융시스템 대신에 증권화된 금융시스템의 비중을 높여왔고, 미국에선 그 주체가 리먼 브러더스나 골드먼 삭스와 같은 투자은행이었다. 전통적 금융시스템의 외부에서 작동하는 이른바 그림자금융의 활약 속에 신용(유동성)이 팽창하고 저소득층도 내 집을 소유하는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 실현되는 듯했다. 하지만 주택가격의 거품이 꺼지자 아메리칸 드림은 악몽(American nightmare)으로 바뀌고, 부실을 간직한 금융기관들도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증권화나 파생상품은 원래 위험을 분산시키려는 목적에서 개발된 것이었으나 무분별하게 발전하면서 도리어 위험을 확산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신용을 팽창시킨 메커니즘이 위기상황에선 신용을 급격히 위축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역회전했다. 왜냐하면 투자의 귀재인 조지 소로스조차 난해하기 짝이 없다고 한 증권화와 파생상품에 일단 불신이 깃들자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함으로써 돈이 돌지 않게 된 것이다. 게다가 신용팽창 과정에서 자기자본에 비해 빚을 크게 늘린(leveraging) 금융기관들이 위기에 처하자 빚을 갚으려 하면서(deleveraging) 신용위축이 초래되었다.

 

 

한편 좀더 근원적으로 따져보면 198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린 시장만능주의도 이번의 위기발발에 한 몫 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금융시장의 글로벌화와 정보화가 급진전된 데 반해 그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느슨해진 것이다. 예컨대 미국 금융을 주무르던 그린스펀은 “시장의 자율규제보다 연방정부의 규제가 우월하다는 증거는 없다”고 큰소리치면서 파생상품이 위험하다는 경고를 일축하였다. 이로 인해 자유경쟁의 시장경제와 시장의 불안정을 조절하는 민주주의적 규제 사이의 불균형이 심화되고 그 결과 세계적 위기가 발발한 셈이다.

 

 

그리고 세계화폐라는 달러의 특권적 지위에 입각해 진행된 미국인의 과소비도 이번 금융위기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1990년대 전반에 8% 수준이던 미국가계의 저축률은 2006년 이후엔 1% 이하로까지 떨어졌고, 이런 과소비는 매년 수천억 달러라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로 나타났다. 그런데 다른 나라라면 이미 파산했을 적자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자국화폐가 동시에 세계화폐이므로 자국화폐로 경상수지 적자를 메웠다. 이리하여 미국민의 소비거품이 주택거품과 맞물리면서 이번의 금융위기로 나아간 것이다.

 

 

 

2008년 10월 현재 미국과 유럽 정부가 은행의 부분 국유화 등 특단의 대책을 취함으로써 세계적 공황(panic) 상황은 다소 진정되었다. 대형금융기관의 줄초상도 멎었고, 은행간 자금융통도 조금씩 풀려 나가고 있다. 다만 위기의 발단인 미국의 주택가격이 앞으로 10~20% 정도 더 하락한다는 예측이 지배적이고, 그리되면 처리해야 할 부실이 더 커질 것이다. 특히 앞으로 금융기관과 가계가 빚을 정리해 가면서 실물부문에서 기업투자와 가계소비가 위축되고, 이는 미국경제 나아가 세계경제 전체의 침체를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세계적 주가불안은 계속되고 있다.

IMF에 따르면 2007년에 3.7%의 성장률을 보였던 세계경제는 2008년엔 2.7%, 2009년엔 1.9%로 성장률이 크게 둔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거품이 꺼진 데 따른 손실은 누군가가 부담해야 한다. 그 부담배분이 일단락되고, 각 경제주체의 자산과 부채가 재정비되고, 새로운 금융시스템이 자리 잡을 때 비로소 세계경제가 회복 궤도에 오르지 않을까 싶다.

 

 

 

2. 위기 속의 한국경제

 

세계적 금융위기 속에 한국경제도 출렁이고 있다. 제2의 IMF사태가 도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 것이다. 1997년 IMF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폭등하고 경상수지가 적자를 보이고 있는 탓이다. 물론 1997년과 다른 점도 있다. 우선 2008년 10월 말 현재 외환보유액이 2,100억 달러로 그 때의 10배 정도다. 그리고 IMF사태는 재벌위기↔금융위기↔외환위기의 형태로 전개되었지만, 지금은 재벌의 재무 상태는 양호하다. 경상수지 적자도 당시와는 달리 유가폭등으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다. 2008년 8월 말까지의 경상수지 적자가 126억불인데 유가상승에 따른 수입증대가 약 160억불인 것이다.

 

 

그런데도 환율의 불안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다가 10월 말 한미통화 맞교환협정 체결로 일단 진정세에 접어들었다. 세계 10대 외환보유국 중 한국만큼 한국의 환율이 급등한 경우가 없다. 이는 우선 금년 들어 외환시장에서 외국인들의 달러 유출이 크게 늘어난 탓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라 외국투자자들이 자체 자금수요를 충당해야 하는데, 한국의 주식시장이 돈을 빼가기 좋은 편에 속한다. 또한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시장의 미래를 낙관하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한국의 주가가 폭락하고 달러수요가 크게 늘어났다.

 

 

여기다 은행의 단기외채 문제가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2005년에 660억불이었던 한국의 단기외채는 2008

년 9월 현재 1,760억불로 급증하였고, 그 대부분이 은행의 단기외채다. 이는 주로 한국인의 해외증권투자에 대한 환헤지(hedge)와 조선업의 선물환거래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그런데 글로벌 금융위기로 예전에는 순조롭던 단기외채의 만기연장이 힘들어져버렸다. 그러니 은행은 국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구하게 되고 이게 환율폭등을 야기했다. IMF사태 때에 비해 자본시장과 외환시장이 대폭 개방됨으로써 국제상황의 변동에 따른 국내경제의 충격이 훨씬 커진 것이다.

 

 

원래 환율의 효과는 모순적이다. 환율이 올라가면 수출업자나 해외자산보유자가 이득을 보는 한편 수입업자나 유학생이 힘들어진다. 따라서 국민경제 전체적으로 보면 환율상승의 효과를 일의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일본은 환율이 너무 내려가 고민하고 있다. 문제는 환율상승 속도가 너무 빠르면 경제전체가 여기에 적응하기 어려우며, 또한 수출업자와 수입업자(및 내수업체) 사이의 양극화가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달러를 많이 빌린 한국의 금융기관은 환율상승으로 상환부담이 커진다.

 

 

그렇다고 정부가 환율을 낮추려고 함부로 달러를 풀면 정작 달러가 절실한 은행의 외채결제가 불가능해질 수 있다. 이는 은행부도와 국가부도로 이어지는 제2의 IMF사태가 된다. 기업에 비유할 때 IMF사태가 적자부도였다고 한다면 요즘은 자칫 흑자부도를 맞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즉 대외채권이 대외채무를 상회하는 흑자상태에서도 부적절한 외환관리로 부도위기에 몰릴 수 있는 것이다.

 

 

한편 환율 이외에 한국경제의 전반적인 상황은 어떠한가. 경제성장률을 보면 2008년 상반기는 5.3%로서 나쁘지 않다. 다만 하반기에는 3%대로 떨어져 금년 전체로는 4%대로 예상되고 있다. 2007년의 5% 성장에 비하면 낮아진 수치다. 일자리 증가도 다소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우리경제는 이미 1960~70년대의 고성장단계를 지났다. 자본의 성숙으로 새로운 성장산업을 찾기 힘들며, 급속한 고령화와 같은 노동의 성숙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한국은 선진국의 저성장단계로 나아가는 중성장단계에 와 있는 셈이다. 따라서 4~5%의 성장률을 무조건 낮다고 탓할 수는 없다. 물론 우리 경제는 중장기적 성장잠재력의 제고를 위해 지식정보화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든가, 여성의 취업률을 높이는 사회제도를 구축해야 한다든가, 자영업의 과잉을 해소해야 한다던가 하는 여러 과제를 안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만약 2009년에 2~3%의 저성장률이 되면 이는 분명한 경기침체를 의미할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실물경제의 침체는 그럴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GDP의 40% 정도로 높은 한국경제는 미국의 소비위축에서 대미수출 감소라는 직접적 타격을 받는다. 아울러 중국에 대한 원부자재 수출도 중국의 대미수출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결국 한국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으로의 수출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유럽경제의 침체 역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리고 국내적으론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양상을 띠고 있다. 가계부채는 근래 크게 증가했고 그 중 절반 가까이가 주택담보 대출이다. 이미 지난 정권 하에서 가계부채에 따른 수백만 신용불량자 문제가 커다란 사회적 이슈가 되었지만, 이는 주로 하층서민에 해당되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근래 가계부채 급증에는 주택가격 폭등에 편승한 중산층의 차입증가가 새로운 요인으로 추가되었다.

 

 

이 주택담보대출의 원리금상환이 2008년 말부터 집중적으로 닥쳐오고 있다.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대출로 매입한 주택을 처분하기가 쉽지 않고, 따라서 가계부채는 생계압박과 소비위축을 초래할 것이다. 여기다 주가폭락도 소비위축을 가중시킨다. 주택가격과 주가의 하락은 일단 중산층에게 보유자산 가치저하라는 점에서 타격을 주고 나아가 내수관련 종사자들에게 매출감소라는 타격을 가하는 셈이다.

 

 

 사실 우리 주택담보대출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당장 은행의 줄초상을 초래할 정도는 아니다. 노무현정권이 LTV(loan to value: 주택가격에 대한 담보인정비율)와 DTI(debt to income: 부채의 연간원리금 상환이 총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 규제를 마련해 놓았기 때문이다. 대출자의 연체가 발생하면 은행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지긴 하겠지만, 최악의 경우 담보주택을 처분하더라도 은행의 손해가 LTV가 높았던 미국만큼 크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미국처럼 주택담보대출을 증권화해 금융상품의 복잡한 연쇄사슬을 만들지도 않았다.

 

 

하지만 미분양 아파트물량이 16~25만 채에 이르러 건설사의 경영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또한 상호저축은행과 일반은행 등이 부동산PF(project financing)에 물린 금액이 수십조 원에 이르러 은행권의 자금압박을 초래하고 있다. 그 결과 중소기업의 자금사정이 어려워졌다. 내수침체 및 키코(KIKO)와 아울러 중소기업들에겐 이중삼중의 타격이 가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수출둔화, 소비위축, 건설사 위기, 은행 자금사정 악화는 한국경제의 침체를 야기하고 있다. 사실 경기가 침체하더라도 그 고통분담이 공평하면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경제는 고성장단계에서 중성장단계로 접어들었으면서도 그에 걸맞은 사회적 안전망이 미비하다. 게다가 IMF사태 이후 양극화가 심화되고, 영세자영업자나 중소기업근로자 및 비정규직의 삶이 고단해졌다. 앞으로의 경기침체에서 이들 서민의 고통이 더욱더 첨예해질 터이므로 문제인 것이다.

 

 

IMF사태는 대내적으론 재벌과 금융기관의 부실, 대외적으론 무분별한 개방정책과 태국 등의 외환위기 전염이 그 원인이었다. 이에 반해 지금의 경제위기는 대내적으론 가계부채 증가, 주가 및 부동산가격 하락, 대외적으론 세계적 금융위기와 국내은행의 단기외채가 그 원인이다. 그런데 IMF사태는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해 재벌과 금융기관을 구조조정함으로써 비교적 단기간에 극복되었다. 반면에 지금은 재정이 그때만큼 양호하지 않고, 구조조정 대상이 엄청나게 많으며, 도덕적 해이를 피하는 구조조정이 용이하지 않고, 세계경기가 나쁘다. 따라서 IMF사태처럼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 되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국경없는 금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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