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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 금융위기 후 10년, 달라진 게 없다

AI독립군 2018. 10. 22. 13:51

금융위기 후 10, 달라진 게 없다

월스트리트가 막강해진 정치적 영향력으로 금융 규제에 물타기하면서 또 다른 위기 불러

 


수백만 명이 일자리·저축·연금·주택을 잃었지만 금융가와 대형 투자자들은 전보다 더 큰 부를 축적했다.

사진:GETTY IMAGES BANK

 

10년 전 월스트리트가 다른 사람 돈으로 도박을 해서 떼돈을 벌다가 거의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물러나는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뒤를 이은 오바마 정부가 은행들에 나랏돈을 쏟아부어 구제해줬다.

 

미국은 그 위기에서 3가지 큰 교훈을 배웠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계속 위험 속에서 산다.

 

첫째 교훈: 뱅킹은 그 도박에 참여하는 소수에게는 대박을 안겨주지만 그런 베팅으로 돈을 잃는 다수에게 완전 쪽박을 차게 하는 위험한 사업이다. 이는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1929년 월스트리트의 붕괴 이후 만들어진 보호장치는 40년 넘게 기능을 발휘하면서 뱅킹을 따분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면서 다수의 안전장치가 희석되거나 폐기됐다. 월스트리트의 수익에 대한 갈증과 함께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졌기 때문이다. 양 진영의 정치인들이 갈수록 정치자금을 월스트리트에 의존하게 되면서 규제완화에 갈수록 가속도가 붙었다.

 

그것은 1982년 미국 의회와 레이건 정부가 저축·대부 조합에 대한 규제를 철폐하면서 시작됐다. 덕분에 그들은 위험한 상업적 대출 사업을 하면서도 대규모 손실이 생기지 않도록 계속 보장을 받았다. 예상대로 은행들이 곤경에 처하면서 국민의 세금을 쏟아부어 구제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 다음 분수령은 로버트 루빈 당시 재무장관을 필두로 하는 클린턴 정부와 의회가 1933년 제정된 글래스-스티걸법을 폐기했을 때였다(참고로 나도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냈지만 이 시점에는 내각에서 물러났다). 은행들이 고객 예금으로 도박을 못하게 한 법이었다.

 

이어 2000년에는 클린턴 정부와 의회가 신용부도스와프(2008년 시장붕괴의 핵심 원인인 복잡한 금융상품 중 하나)를 포함한 장외거래 파생상품 계약에 대한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규제를 대부분 금지했다. 결정타는 2004년 조지 W. 부시 정부의 증권거래위원회가 투자은행들의 지불준비금 기준을 완화한 것이었다. 그 뒤 2008년 금융위기가 닥쳤고 그 뒤 또다시 보호막(도드-프랭크법)을 설치하려는 시도가 뒤따랐다.

 

지금은 어떠냐고? 월스트리트가 어느 때보다 막강해진 정치적 영향력으로 현재 도드-프랭크법에 물타기를 하면서 또 다른 위기를 부르고 있다.

 

미국이 배웠어야 할 또 다른 교훈은 불평등 확대와 관련된 문제다. 2008년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임금이 제자리걸음하면서 많은 미국인이 가치가 상승하는 집을 담보로 삼아 빚더미에 올라앉게 됐다(1929년에 이르기까지 수년간의 상황도 상당히 비슷했다).

 

월스트리트 은행들은 거기에 장단을 맞춰 인심 좋게 그리고 종종 약탈적인 방식으로 돈을 빌려줬다. 그러다가 주택과 부채 거품이 터지고 말았다.

 


지금은 어떠냐고? 경제성장의 과실이 대부분 최상층부에 집중되면서 근본적인 임금정체 문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번에도 소비자는 빚더미에 올라 앉아 또 다른 위기를 부른다.

 

우리가 터득하지 못한 세 번째 큰 교훈은 미국 정치의 담합과 관련된 문제다. 2008년 대불황 이후 많은 미국인은 월스트리트·대기업·부유층이 사실상 미국 민주주의를 매수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금융기업들은 정부의 구제를 받은 반면 집값보다 갚아야 할 모기지 빚이 갑자기 더 많아진 주택 소유자들은 거의 또는 전혀 구제를 받지 못했다.

 

수백만 명이 일자리·저축·연금·주택을 잃었지만 금융가와 대형 투자자들은 전보다 더 큰 부를 축적했다. 대형 사기를 친 은행가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빠져나갔다. 웰스파고 같은 대형은행들은 계속 법을 어기면서도 죄값을 치르지 않았다.

 

월스트리트 규제완화에 관여한 많은 관료가 그 혜택을 본 은행의 고위 경영진으로 합류했다. 도드-프랭크법 제정에 관여했던 일부는 거기에 물타기를 하는 금융기관들에 고용됐다. 한편 대기업과 부자들은 정가에 계속 돈을 쏟아부으며 워싱턴 D.C.연고 자본주의(crony capitalism)’의 수도로 만들고 있다.

 

이 모든 부조리에 대한 광범위한 분노가 불씨가 돼 보수 진영에선 티파티(보수 진영 시민정치연합), 진보 쪽에선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이 일어났다. 두 운동의 형태가 변형되면서 궁극적으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2명의 반체제 후보를 낳았다. 권위주의적인 포퓰리스트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적인 포퓰리스트 버니 샌더스다.

 

지금은 어떠냐고? 미국 정치에서 체제를 향한 분노가 여전히 가장 강력한 동력으로 남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거기에 편승해 인종차별적이고 외국인혐오적인 음모를 획책하면서 근대 미국 역사상 가장 권위주의적인 정권을 만들어간다. 그는적폐를 청산하겠다(drain the swamp)”고 약속했지만 그것을 더 더럽고 크게 키워놓았다.

 

민주당 진영은 단순히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권위주의에 반대할지 아니면 자본권력으로부터 정치와 경제의 통제권을 빼앗아오는 개혁 아젠다를 지지할지 갈팡질팡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런 개혁을 실시하려면 수십 년 동안 뒷돈을 대준 사람들에게 칼을 휘둘러야 한다. 그들이 과연 그렇게 할까 하는 의구심을 억누르기 힘들다.

 

안타깝게도 금융위기 후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거의 배운 것도 없이 상황이 더 악화된 듯하다. 이젠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뒀으니 말이다.

 

– 로버트 라이시

 

[필자는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 캠퍼스) 공공정책대학원 교수이며,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장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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