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과 VC투자매칭

스타트 업Story - 온오프믹스 (ON Off MIX)

AI독립군 2016. 8. 29. 09:22

스타트 업Story

[Start-Up Impact] 양준철 온오프믹스 대표

“온오프믹스는 창업이 아닌 인수

 

㈜벤디츠 CMO 이욱희 (skyseapoet@hanmail.net)

 

‘까칠하다. 직설적이다. 까다롭다. 어렵다.’ 양준철 온오프믹스 (ON Off MIX) 대표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보통 이렇게 말한다. 양 대표보다 연배가 높은 이들도 쉽게 그에게 말을 놓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 고등학생 때 창업을 시작해 인생의 반을 IT 업계에서 있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미 굵직한 기업이 된 IT 업계 대표를 제외하곤 국내 IT 스타트 업의스타의 반열에 있다. 창업 강연, 멘토링, 방송출연 등 대한민국의 스타트 업 관련해서 는 그는 단골손님으로 통한다.

 

양 대표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행보를 들으면서, 그의 첫 이미지가 오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신중하다. 솔직하다. 객관적이다.’라고 할까. 단순히 각종 행사 정보를 알려주는 행사 공유 온라인 플랫폼온오프믹스창업가 양 대표를 판단할 일이 아니다. 그의 사업적 소양을 알기 전에 IT 와의 만남, 사업의 시작, 온오프믹스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야만 비로소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내 사랑 ‘286’를 만나다

‘공학박사, 테크노 목사, 성악가…’어린 시절, 꿈이 많았던 양 대표를 IT 세상으로 이끈 것은 컴퓨터다. 전원을 켜면 인터넷도 되고 다양한 기능이 되는 요즘 컴퓨터가 아닌 코드를 입력해야만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가 그를'(geek·괴짜)으로 만들었다. (빌 게이츠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자신을이라고 말한 바 있다.)

7살 때 은행원 이신 아버지의 동료가 해외로 가면서 MSXMSX -Ⅱ 컴퓨터를 내게 줬다. 코드를 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실행되지 않는 컴퓨터였다. 이것 때문에 시스템에 계속적으로 갖을 수 있었다.”

양 대표의 두 번째 컴퓨터는 ‘286’이다. 아버지 지인이 새로 컴퓨터를 사면서 286 컴퓨터를 그에게 준 것이다. 그 당시, 양 대표는 초등학교 컴퓨터실에서 수위가 학교 문을 잠그기 전까지 PC 통신을 했다. 또 사촌 형의 좋은 컴퓨터를 보고 밥을 먹지 않을 정도로 컴퓨터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어릴 적에 컴퓨터 가격이 엄청 비쌌는데, 할머니와 어머니가 돈을 모아서 컴퓨터를 사 줬다. 그 컴퓨터로 천리안, 나우누리 등 PC 통신을 접했다. 전화비가 27 만원이 나와서 어머니에게 혼나기도 했다.”

전화 모뎀 선으로 PC통신을 할 수 있었던 그 때, 엄청난 전화 비용은 양 대표가 IT 라는 산업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그는돈을 안 들이고 PC 통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고민하다가, 사설 BBS 를 운영할 수 있는 호스트 프로그램 '등대' '호롱불'을 사용 하게 된 것이다. 초등학생인 신분에 호스트 동호회 카페에서도 활동하며, 거기서 만난 컴퓨터 고수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부모님 사업의 성공과 실패, 사업에 눈을 뜨다

컴퓨터가 양 대표를 IT 에 눈을 뜨게 했다면, 부모님 사업은 양 대표에게 힘겨운 사춘기를 보내게 했지만 창업에 눈을 뜨게 해준 매개체 역할을 했다.

“어머니가 철제 가구(콘솔) TV 에서 보고 사업하면 잘되겠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대형 쇼핑몰 앞 매대 에서 철제 가구를 팔았다. 걱정과는 달리 물건이 불티나게 팔렸다. 은행원인 아버지 월급보다 어머니가 돈을 많이 벌 정도였다. 일손이 부족해 어린 나와 누나가 도와주기도 했다. 아버지도 일을 그만두고 어머니를 도왔다

몇 년 동안, 양 대표의 부모님 사업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양 대표 아버지의 친구가 똑같은 아이템으로 바로 옆에 가게를 차리면서 사업은 곤두박질쳤다. 양 대표 집은 사채 빚까지 사용하면서 하루아침에 빚더미에 앉게 됐다.

“빚쟁이에 쫓기면서 부모님은 피신을 했다. 나와 누나는 할머니 집에서 살아야만 했다. 사채업자들이 누나를 협박하기도 했다. 그때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나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운동으로 몸을 단련하고 가장 노릇을 했다.”

 

중학생 때부터 부모님 대신 가장이 되어야 했던 양 대표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기 시작한다. 컴퓨터 부품을 갈아주거나 OS를 설치해주면서 소소하게 돈을 번 것이다.

“돈을 벌면서 리눅스와 해킹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PC통신을 이용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도 했다. 부모님이 없는 외로움을 인터넷으로 달랬다. 이때홈 오토메이션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됐다.”

 

고등학생 때, 꿈을 위해 창업을 하다


중학교 3학년 시절, 양 대표는홈 오토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뜻이 맞는 친구들을 모았다. 이렇게 뭉친 친구들과 창업하기로 결심한다. 마침, 평택 모 고등학교에서 양 대표를 지원해주겠다면서 나섰다. 또 포스코 과학 홈페이지 대회에서 만난 디자인 팀도 창업에 동참했다.

“우리는 같은 고등학교로 입학하고 티투디엔(T2DN)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나는 서버 와 프로그래밍을 담당했다. ‘오프라인 사업을 온라인화 하겠다는 마음으로 ‘E비즈니키라는 이름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고등학생들의 창업은 미디어들에게 좋은 먹잇감 이었다. 티투디엔을 여러 언론사에 보도가 됐으며, 양 대표와 다른 공동대표는 인터뷰를 하면서 대중의 관심을 받았다. 이는 사업에 균열을 초래하는 원인이 됐다.

“공동대표는 사업보다 미디어에 나오는 것에 도취됐다. 다른 팀원들도 미디어에 우리만 노출되 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 이런 문제들로 직원들이 일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난 직원들에게탄핵을 당하기도 했다. 그래서 지분, 경영, 회사관련법에 대해 공부했다.”

사업 시작 2년 만에 티투디엔은 와해가 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티투디엔이라는 회사명으로 사업을 하고 싶은 다른 고등학생들이 양 대표와 다른 공동대표를 이간질하면서 끝내 사업은 막을 내렸다. 2002 9월 한국이 월드컵 4강에 들면서 축구 열기가 한창일 때였다.

 

■ 두 번째 사업이 남겨준 건세상의 무서움과 1000만원 빚

2003, 양 대표는 두 번째 사업의 기회를 얻었다. 20대 중반 한 창업자가 양 대표를 찾아와 같이 3D 쇼핑몰 사업을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두 사람이 사업을 시작한 지 몇 달 만에 10억원 투자 유치도 성공했다.

“투자를 받고 나서 대표가 외제차를 타고 호텔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고 다녔다. 내가왜 그렇게 돈을 쓰고 다니냐?’고 하니까영업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했다. 난 그 사람을 신뢰했기 때문에 믿었다. 그런데 6개월 동안 그는 사무실 출근도 잘 하지 않았다.”

그 대표는 일이 아닌 노는 일에만 정신이 팔린 것이다. IT 사업으로 돈을 벌기 보다는 의약품을 수입해서 스티커만 바꿔 붙여서 돈을 벌기까지 했다. 양 대표는 더 이상 이 사람과 사업을 같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회사에서 손을 뗐다.

“고3 가을쯤 인 것 같다. 회사에서 나왔는데 빚이 1000만원이 넘었다. 공동창업자로서 컴퓨터 장비 등이 모두 내 명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 서 나는 밀린 월급으로 빚을 갚기 위해 노동부에 찾아갔다. 그런데 노동부는 나한테 무례했다. 창업 대표에게만 잘해줬다. 내가 계약서를 쓰지 않았던 탓이었다.”

양 대표는 두 번째 사업으로 인생의 쓴맛을 봤다. 그리고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다 준 블로그를 하게 된다. 블로그를 통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노동부 등을 고발하는 글을 쓴 것이다.

“내가 쓴 글을 다른 블로거 선배들이 보고 왜 이런 글을 쓰냐고 물었다. 나는 내 사업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랬더니 형들이 내가 세상을 잘못 안 것 같다며, 다음커뮤니케이션 에 입사를 시켜줬다.”

 

세상을 알기 위해 IT 기업들을 전전하다

양 대표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사업만 하지 않았다. 다양한 IT 기업에서 내공을 쌓았다. 그 첫 발자국이다음커뮤니케이션이다. 19살 겨울, 양 대표는 포털 업체 다음커뮤니케이션에 입사한다.

“다음에서 플랫폼 본부 카페 팀에서 카페 콘텐츠 관리를 맡았다. 고등학교 사업 경험 등 이 인정받으면서 팀장 회의에도 참여했다. 회의에서 마음껏 이야기해보라고 해서 건의를 많이 했더니 싸가지고 없다고 찍혔다. 그 이후에 팀장 회의에 참여하지 못했다.”

당시, 1위 포털 기업 이었던 다음은 2위 업체였던 네이버 에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네이버는 배우 전지현을 광고모델로 앞세워 다음의 핵심 서비스인카페에 대항했다. 화가 났던 양 대표는 직접 광고를 기획해 스토리보드를 만들었다.

“직접 만든 광고 기획을 바로 위 팀장에게 제출했다. 그랬더니왜 이렇게 깝치냐?’고 나를 정리했다. 이때 세미나에서 만난 지인이 너처럼 돌+아이 같은 놈이 갈만한 회사가 있다고나무커뮤니케이션에 보냈다. 당시 대표직을 맡고 있던 이수형 대표님을 만났다.”

검색광고 대행사였던나무커뮤니케이션에 들어간 양 대표는 키워드 관련 데이터 일을 맡았다. 개발자 출신이었던 그는 남들이 이틀 동안 해야 하는 일을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려서 10분 만에 끝냈다. 회사에서는 양 대표에게컴퓨터 신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회사 내에서 내 소문이 났다. 임원들이 나를 보러 직접 찾아왔다. 어느 날, 이수형 대표님이 나를 회식자리에 불렀다. 그리고 다음커뮤니케이션의 문제에 대해 물었다. 나는 거침없이 답했더니, 인턴 2주만에 정규직으로 특별 채용됐다.”

‘나무커뮤니케이션은 양 대표가 IT 사업을 이해하게 만든 곳이다. 이 회사에서 그는 이수형 대표의 배려로 자유롭게 생각을 펼치게 되고 크거나 작은 성과를 만들었다. 나중에 다음커뮤니케이션이나무커뮤니케이션지분 100%을 인수하면서 이수형 대표는투익스프레스회사 전문경영인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수형 대표님이 회사를 옮길 때, 나도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네오위즈 검색엔진 TFT에 들어가 콘텐츠 관리를 했다. 장병규대표님 (네오위즈 이사)첫눈팀의 전신이다. ‘첫눈이 네이버에 매각하기 전에 나는 회사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투익스프레스로 이직 했다.”

투익스프레스에서도 양 대표는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며, 다양한 IT 경험을 쌓았다. 2007, 병역특례로 군입대하자마자 투익스프레스는 다른 회사에 매각됐다. 그는 병역특례를 통해 온라인여행사 등 3곳의 IT 회사에서 일을 했다.

 

■ 온오프믹스는 창업이 아닌인수


온오프믹스라는 이름은 양 대표가 만든 것이 아니다. 김대중, 조재호라고 하는 두 명의 개발자가 팀을 이루어 만들었던 '온오프믹스'라는 이름을 양 대표가 인수한 것이다. 처음에 양 대표는 지금의 사업모델과는 조금 다른 당시의 온오프믹스의 베타서비스 사용자로 참여하며, 성장을 기대했던 사람일 뿐이었다.

“온오프믹스가 오픈한 지 1년이 지나도 진척이 없었다. 알아보니, 온오프믹스 메인 개발 자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더 이상 온오프믹스를 운영할 수 없는 상태였다. 온오프믹스는 소프트뱅크미디어랩이 진행하던리트머스에서 인큐베이팅을 받던 팀이었는데, 당시 소프트뱅크는팀을 해체할지’, ‘누군가에게 인수시킬지고민하고 있었다.”

온오프믹스에 대한 성장 가능성과 비전을 본 양 대표는 온오프믹스를 인수하기 위해 맨 몸으로 뛰어들었다. 경쟁자는 자본력도 있고 능력 있는 개발자가 있는 팀이었다. 양 대표에게는 현재 온오프믹스 부사장인 이상규씨 밖에 없었다.

나는 결혼도 안 했고, 나이도 어리고, 이미 실패를 두 번이나 경험했다. 이 사업은 오랫동안 버텨야 성공할 수 있는 사업인데, 우리 팀은 버텨낼 자신이 있다고 소프트뱅크 미디어 랩 측을 설득했다. 결국 그들은 내 손을 들어줬다.”

양 대표는 2년 동안 지금의 온오프믹스를 만들기 위한 비즈니스모델 연구 및 사업적 타당성 검토를 이상규 부사장과 논의 하고 나서 기나긴 여행에 발을 뗐다. 소셜커머스가 한 참 뜰 시기에 온오프믹스를 소셜커머스로 사업 전환(피벗)을 하면 10억원 투자하겠다는 제안도 거절했다.

온오프믹스가 사업적 궤도에 올라오는 계기가 있다. 바로 2009년 말, ‘한국 트위터 사용자 파티 ‘TEDX명동’, ‘TEDX서울’, 그리고 2011년에 진행된청춘 콘서트 2012년부터 시작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등 이다. 이 행사들은 온오프믹스에 날개를 달아준 것 이다.

 

온오프믹스를 이끄는 사람들

2008년부터 온오프믹스가 오랫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사람이 큰 몫을 차지한다. 좋은 성품을 가진 이상규 부사장, 양 대표 사업을 도와주겠다며 세무 회계를 공부해 2015년부터 재무 팀장을 맡고 있는 친 누나, 투어익스프레스에서 같은 근무했던 상사인 UX/UI 팀장이다.

 


2010년 초창기 입사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함께 일해주고 있다. 온오프믹스는 다른 스타트업처럼 큰 복지도 없으며, 인테리어도 화려하지 않다. 다만, 일부에게만 혜택이 가는 불합리함 없이 경영을 한다.”

온오프믹스는 업무 분담이 확실하게 되어 있다. 양 대표는 주로, 온오프믹스의 마케팅과 제휴 업무와 주요 데이터들에 대한 지속적인 체크, 회사 성장성에 대해 고민한다. 각 팀 별로 팀장들이 팀원들의 업무를 관리하고 팀장들의 업무 관리는 부사장이 맡고 있다.

이렇게 처리되는 일들은 전산 업무관리 시스템인 Atlas Sian JIRA Confluence, Fisheye을 통해 회사 직원들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업무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를 정확 하게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스타트 업이 가진 장점인빠른 실행과 빠른 수정의 측면에 서 효율적이다.

양 대표와 이 부사장이 개발자 출신이라는 점은 회사의 발전에 한몫을 한다. 비 개발자 출신인 임원진에 비해 엔지니어들과 소통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이런 소통은 역할 분담과 협동의 효율성에 대해 답을 얻는다.

특히 양 대표는 온오프믹스를 잘 이끌기 위해 인문학 포럼 등에 참여하거나 창업 선배 들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다.

“내게만 생기는 문제이고, 내가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선배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CEO로서 성장해 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들인 경우가 많아서 위로와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

 

외주 개발과 투자 유치 사이

온오프믹스의 BEP(손익분기점) 달성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양 대표는 섣부른 투자 유치는이라고 여겼다. 돈을 만들어낼 수 없는 조직은 금방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다.

온오프믹스는 초기 3년간 웹사이트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외주 개발(SI)을 통해 운영 자 금을 조달했다. 2013년에는 그동안 모은 자금을 쏟아서 시스템 개발에 집중했다. 그 결과 2014년 초 BEPBEP를 초과 달성했다.

“온오프믹스에는 나름의 재무 운영의 원칙이 있다. 열심히 일해서 얻은 이익은 낭비하지 않고, 아끼고, 높여서 넘치는 이익을 만들고, 꼭 필요한 지출을 할 때는 아낌없이 쓴다. 또 불필요한 지출하는 데는 인색하게 소비한다.”

온오프믹스는 술자리 접대, 사무실 인테리어에 소비를 하지 않는다. 회식보다는 낮에 간식을 먹으며, 특별한 날에는 임원들이 각출해서 지출한다. 대표와 부사장은 창업 후 5년간 연봉 2500만원도 안 되는 적은 급여를 받았다.

“온오프믹스가 20억원 이상의 투자유치를 할 수 있었던 비결에는 보수적인 소비도 작 용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투자자들도 우리에게 좋은 인식을 갖은 것 같다. 투자 심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그 동안의 공과 사를 솔직하게 다 꺼내 놓고 이야기했던 것 이 좋은 인상을 미쳤다.”

온오프믹스는 2010년 본격적인 창업 3개월 만에 프라이머 1호 투자회사 선정, 2012 10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투자 유치, 2013 07월 크라우드펀딩 형식의 사모 투자 유치, 2016 04월 크라우드펀딩 공모 투자유치 등으로 온오프믹스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파트너들에게 투자를 받았다.

 

재무적 위기, 대출받아 직원들 퇴직금 지급

큰 액수의 투자를 받은 온오프믹스도 재무적인 위기가 있었다.

2013년도 2, 전년도 외주 개발 대금이 미 입금이 되면서 온오프믹스에 자금 유동성 문 제가 발생했다. 이에 양 대표는 자신의 적금과 예금을 해약하고 카드사 신용 대출까지 받아서 자금을 메꿨다.

“주변에 있는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다들 내 잘못이라고 질타만 했다. 그때 너무 속상하고 우울했다. 우울증도 찾아와서 3개월간 잠도 못 잤다. 회사에 나가기가 너무 힘 들어서 부사장과 팀장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쉬기도 했다.”

2014년 초 BEP를 달성하고 난 후 몇 곳의 벤처 투자자(VC)로부터 투자를 받기로 확정이 되면서 인력을 늘리고, 사무실 설비도 늘린 것이 재무적 문제로 불거졌다. 2015 5월까지 투자가 연기되면서 모아둔 자금이 모두 소진된 것이다.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일부 인원에 대해서 양해를 구하고 연봉 재협상을 할 수 없다고 알렸다. 다른 회사 이직도 추천했다. 주거래 은행을 찾아가 1억브릿지 대출을 받아서 그들의 퇴직금을 지급했다.”

재무적 위기에 도움의 손길을 받기도 했다. 남민우 다산 네트웍스 회장이 양 대표의 사정을 알게 되면서 자금을 융통해준 것이다. 양 대표는 투자와 대출 중에서 선택하라는 남 회장의 제안에 2억원의 자금을 빌려서 재무적 문제를 해결했다.

 

온오프믹스, 모임/행사 하면 먼저 떠오르는 단어


자금 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온오프믹스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온오프믹스 만의 철학과 비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온오프믹스는 사람들이 가진 세상에 대한 질문 과 실행을 담는 그릇이 되는 기업, 정보기술을 활용해 이벤트 관련 산업을 발전시키는 기업이라는 회사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 동안 모임/행사를 만드는 주최자들을 위한 기능들에 집중해 왔다. 앞으로는 그동안 쌓아온 데이터를 분석해 모임/행사에 활발하게 참여하는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모임/행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검색과 추천 기능에 집중하려고 한다.”

또 양 대표는 모임/행사와 관련된 서비스와 상품을 제공하는 회사들이 모임/행사 주최 자들과의 거래를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오픈마켓을 구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미생인 양 대표는 오늘도 꿈꾼다. “ ‘모임또는행사라는 단어가 나오면 온오프믹스를 누구나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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