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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칼로 만드는 자들에게

AI독립군 2026. 4. 13. 11:06

과거의 상처를 현재의 칼로 만드는 자들에게

-이재명 대통령의 이스라엘 비판이 던진 근본적 질문들-

 

오류를 인정하되 본질을 놓치지 않는 용기

이재명 대통령이 소셜미디어 X를 통해 공유한 영상이 2년 전 자료였고, 어린이가 아닌 성인의 시신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대한 정정과 반성은 당연하다. 그러나 영상의 진위 여부가 가자지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간인 학살의 현실을 지워버리지는 못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속 발언에서 강조한 "어떤 상황에서도 국제인도법은 준수돼야 한다"는 메시지야말로 이번 논란의 진정한 핵심이다. 정보의 정확성을 기하지 못한 것은 분명한 실책이지만, 그 실책이 보편적 인권 원칙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를 무효화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홀로코스트 기억의 정치적 남용, 그 구조적 문제

이스라엘 외무부가 "위안부 강제, 유태인 학살이나 전시 살해는 다를 바 없다"는 표현에 발끈한 것은 예상된 반응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반응 속에서 우리는 홀로코스트 기억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남용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인류 보편의 죄'로 확장하여 전 세계를 도덕적 채무자로 만드는 논리 구조가 있다. 나치 독일의 범죄가 마치 인류 전체의 원죄인 양 포장되면서, 식민지 피해국인 아시아와 아프리카 민중들까지도 이 '집단적 죄책감'에 포섭된다.

둘째, 이러한 보편적 죄의식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이라는 특정 국가에게는 영구적 면책권과 특별한 안전보장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셋째,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에 대한 정당한 비판조차 곧바로 '반유대주의'와 등치시켜 국제인도법이라는 보편적 잣대가 설 자리를 잃게 만든다.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찔렀다. 홀로코스트의 참혹함은 부정할 수 없는 인류사의 비극이지만, 그 비극이 오늘날 어떤 국가의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는 '만능 면허증'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죽음 앞에서, 존엄 앞에서, 국제인도법 앞에서 우열은 없다.

 

식민지 조선, 왜 홀로코스트에 부채의식을 가져야 하는가

더 근본적인 문제는 한국의 역사적 위치에 대한 몰이해다. 1910~45년대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였다. 조선 청년들은 일본군으로 강제 징집되었고, 조선의 여성들은 위안부로 끌려갔다. 국가 주권을 빼앗긴 식민지 민중이 나치 독일이나 일본 제국주의와 동급의 가해 책임을 진다는 것은 역사 왜곡에 가깝다.

 

조선은 가해 제국과 한편에 선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동시에 피해를 겪던 피식민 사회였다. 홀로코스트 이후의 '집단적 기억 정치'가 유럽 중심으로 형성되면서 아시아와 아프리카 식민지 경험, 위안부 문제, 난징학살 같은 범죄는 주변화되었다. 그럼에도 이 기억 정치의 장에서 한국까지 '도덕적 채무자'로 끌려 들어가는 것은 부당하다.

 

한국이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이스라엘의 군사 행동을 비판하는 것은 반이스라엘 편향이 아니라 피해자의 역사적 연대다. 우리는 제국주의 폭력의 직접적 피해자로서, 그 어떤 나라보다 더 깊이 국가 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과 인권 침해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는지를 알고 있다. 이것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삶을 통해, 독립운동 열사들의 피를 통해 체득한 집단적 기억이다.

 

매국은 양심을 버리는 데서 시작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정치와 언론 영역에서 매국 행위가 버젓이 벌어진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은 이번 사안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이다. 일부 정치권과 언론이 이스라엘의 반발을 계기로 "괜히 건드려 외교문제 만들지 말자", "국익을 위해 조용히 넘어가자"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매국 행위다.

 

국익을 너무 단기적이고 협소하게 이해하는 시각이 문제다. 특정 국가의 비위를 맞추거나 일부 무기 거래, 경제 협력만을 국익으로 보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장기적으로는 인권과 국제법 문제에서 일관된 태도를 보이는 국가가 더 신뢰받고, 더 넓은 협력의 기회를 얻는다. 위안부, 강제징용, 식민지 수탈을 겪은 나라의 국민이 다른 지역의 민간인 학살과 점령을 보고도 침묵을 강요받는다면,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값싸게 만드는 셈이다.

 

경향신문이 사설에서 지적했듯이 "대통령의 글은 한국인의 평균적인 상식과 국제 사회의 보편적인 인권 가치에 부합한다." 어느 나라의 폭력 앞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나라, 피해자의 기억을 거래하지 않는 나라가 장기적으로 진짜 국익을 지킨다.

 

새로운 외교 리더십의 탄생

이재명 대통령의 이번 발언은 대한민국 외교의 새로운 정체성 선언으로 읽혀야 한다. 그동안 한국은 국제 인권 문제에서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특히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는 사안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이것은 외교적 신중함이라기보다는 외교적 자기검열에 가까웠다.

 

그러나 세계는 변하고 있다.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및 이란 공습작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으며, 국제사법재판소는 이스라엘에 대한 집단학살 혐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런 국제적 흐름 속에서 대한민국이 침묵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국익에 부합하는가.

 

이재명의 발언은 피해의 역사를 가진 나라로서, 인권과 국제법의 보편적 가치를 지지하는 나라로서,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에서 독립적인 도덕적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것은 눈치 보기식 실용주의를 넘어 세계 10위권의 국력에 걸맞은 규범적 리더십의 발휘다.

 

우리의 고통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할 이유는 없다

일제 강점기의 고통은 대한민국 국민의 집단 기억 속에 살아있다. 그 기억은 우리에게 분노와 슬픔만을 남긴 것이 아니라, 폭력 앞에서 침묵하지 않을 도덕적 의무도 함께 남겼다. 우리가 독립을 외쳤을 때 세계가 침묵했던 것처럼, 오늘 우리가 가자의 아이들 앞에서 침묵한다면, 우리는 그 기억을 배신하는 것이다.

 

홀로코스트의 비극은 진정으로 존중받아야 하지만, 그것이 현재의 폭력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피해자의 역사는 가해자의 면죄부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국제인도법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 민간인의 생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받아야 한다는 가치, 그리고 대한민국이 그 가치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자기 확신 - 이것이 이번 논쟁이 우리에게 남긴 진짜 유산이다.

 

매국은 국익을 위해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욕을 위해 보편적 인권의 목소리를 틀어막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매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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