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금융과 무역어음
지난 24일 경기도 果川에 있는 정부 제2청사에서는 ‘무역애로타개를 위한 民官합동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는 무역현장에서 뛰는 기업인들로부터 애로사항을 청취하여 이를 해소해주기 위해 정부가 마련한 것이다.
정부는 지난 1월부터 모든 경제부처 각료와 재계대표들을 대거 참석시켜 매달 한번씩 이 회의를 열고 있다. 그러니까 이번 24일의 회의는 두 번째가 되는 셈이다.
지난 1월의 회의에서 재계 대표들은 많은 제안을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무역금융의 전면 부활, 정부는 지난 24일 2차 회의에서 무역금융제도를 일부 보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현재 연간 수출실적이 1억 달러를 넘으면 수혜대상에서 무조건 제외하고 있는 규정을 철폐, 오는 4월부터는 재벌그룹에 속하지만 않으면 누구나 1억 달러어치까지는 무역금융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억 달러 초과분과 재벌그룹소속 대기업들에 대해서는 무역어음을 통해 자금을 활용할 수 있도록 은행 등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연간 3조원 이상의 무역어음을 인수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국내외 무역어음할인 규모는 1조원선이었다. 여기에 비교하면 수출기업들이 어음할인을 통해 조달할 수 있는 돈이 무려 2조원이나 늘어나게 됐다.
재계대표들은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불만을 표시했다. 무역어음만으로는 수출에 별 도움이 안 된다며 무역금융을 전면 부활해 줄 것을 거듭 촉구한 것이다. 재계가 무역금융을 고집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무역금융과 무역어음은 얼핏 들으면 비슷한 상품 같지만 실제 내용은 엄청나게 다르다. 두 어음은 수출업자에게 자금을 지원해 준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그러나 그 내용은 현격히 다른 것이다.
가장 큰 차이는 韓銀 재할인 여부. 무역금융에 대해서는 韓國銀行이 재할인을 해주지만 어음에는 이 같은 혜택이 부여되지 않는다. 재할이란 시중은행이 할인한 어음을 중앙은행이 다시 사들이는 것을 말한다.
재할혜택이 부여되는 어음은 시중은행이 서로 사들이려고 경쟁을 벌인다. 곧바로 한국은행이 되사주기 때문에 은행으로서는 자금부담이 없다. 더구나 재할금리는 현재 7%로 일반 매출금리보다 낮다. 만약 은행이 11%로 무역금융을 해주고 이를 전부 재할인 받는다면 자기 돈 한푼 안들이고 4%포인트의 금리차를 누릴 수도 있다.
재계가 무역금융 부활에 집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무역금융혜택을 받으면 수출업자는 자기 돈이 없어도 사업을 꾸려갈 수가 있다. 시중은행이 수입신용장(L/C)만 보고 수출대금의 거의 대부분을 싼 이자로 융자해 주기 때문이다. 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은 수입업자로부터 판매대금을 받아 갚으면 된다.
이에 반해 무역어음에는 재할혜택이 부여되지 않는다. 수출기업이 L/C를 토대로 금융기관을 찾아 다니며 어음을 팔아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3조원이나 매입하도록 해주겠다고 해도 업체들의 반응은 시큰둥한 것이다.
수출 한 측면만 생각한다면 정부로서도 모든 기업들에 무역금융을 수혜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국민경제적인 부담이 따른다. 무역금융은 재할을 해주어야 하는데 재할은 韓銀이 새로 찍어낸 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재할금액은 바로 통화증발로 연결된다.
KDI의 李德勳박사는 “경제의 안정기조 유지를 위해서는 통화의 안정적인 공급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무역금융수혜대상을 전체 비계열대기업으로 확대한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증발할 돈이 있으면 무역금융보다는 새로 유망업종에 뛰어드는 기업을 지원하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무부 이재국의 관계관들도 무역금융확대에 완강히 저항했다. 그러나 고위층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비계열대기업에 대해 무역금융을 재개한 것이다. 대신 지원한도를 1억 달러로 제한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관리의 사표소동까지 빚었다. 지금 우리는 赤字타개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그 방안에 대해서는 이처럼 큰 시각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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