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과 VC투자매칭

엔트로피의 몰락: 2700만 달러로 배운 스타트업 생존 법칙

AI독립군 2026. 1. 30. 08:54

엔트로피의 몰락: 2700만 달러로 배운 스타트업 생존 법칙

-'멋진 기술' '팔리는 제품'이 되지 못하는 이유-

 

 

2026년 초, 실리콘밸리에서 한 스타트업이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이름은 엔트로피(Entropy). 세계 최고의 벤처 캐피털(VC) 중 하나인 a16z로부터 2,7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6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암호화폐 스타트업이다. 창업자 턱스 퍼시픽(Tux Pacific) 4년간의 여정을 단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벤처 스케일의 비즈니스 모델을 찾지 못했다."

 

이 문장은 오늘날 스타트업 생태계의 가장 뼈아픈 진실을 압축한다. 뛰어난 기술력, 화려한 비전, 그리고 거대 VC의 자금까지 모두 갖췄음에도 불구하고 왜 실패했을까? 엔트로피의 사례는 기술이나 비전의 부족이 아닌, 훨씬 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실패를 보여준다. 이들의 값비싼 실패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세 가지 결정적인 교훈을 남긴다.

 

기술이 아닌 신뢰가 지배하는 시장

엔트로피는 기술적으로 명백히 더 우월한 솔루션을 제시했다. 기존 암호화폐 수탁(Custody) 서비스의 단일 실패 지점(Single Point of Failure)을 해결하기 위해, 키를 여러 조각으로 분산시키는임계 서명(Threshold Signing)’다자간 연산(MPC, Multi-Party Computation)’ 기술을 도입한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더 안전하고 우아한 설계가 분명했다.

 

하지만 시장은더 안전함이라는 기능에 돈을 지불하지 않았다. 암호화폐 수탁 시장은 기능 경쟁이 아닌신뢰경쟁의 장이었기 때문이다. 기관 시장에서는 Fireblocks, Copper 같은 강자들이, 개인 시장에서는 MetaMask, Phantom 같은 거인들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수년에 걸쳐 감사 기록, 규제 준수, 기존 고객과의 관계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신뢰 자산을 쌓아왔다. 특히 Fireblocks 2025년 기준 매달 2,000억 달러 이상의 스테이블코인 거래를 처리하며 전년 대비 300%의 성장을 기록했고, 1,800개 이상의 유동성 파트너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엔트로피의 기술적 우위는 이 거대한 신뢰의 해자를 넘어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이 시장에서는 "규제 준수가 곧 해자(Compliance is a Moat)"였던 것이다.

 

보안, 금융, 인프라 영역에서는 기술적 우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뢰를 쌓는 로드맵이 제품 로드맵만큼 중요하다. 당신의 솔루션이 10배 좋아도, 전환 비용이 높고 기존 솔루션이 '충분히 좋으면' 고객은 움직이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는가, 문제로부터 도망치는가

수탁 시장의 높은 벽에 부딪힌 엔트로피는 방향을 틀었다. 처음에는암호화폐용 Zapier’를 표방하며 자동화 플랫폼으로, 그다음에는 ‘AI 에이전트 플랫폼으로 피벗을 거듭했다. 지갑을 단순한 '금고(safe)'에서 '잠들지 않는 주니어 애널리스트(junior analyst who never sleeps)'로 만들겠다는 비전이었다. 피치덱은자율 에이전트”, “컨텍스트 인식과 같은 화려한 유행어들로 채워졌다.

 

그러나 이는 기존의 강점을 활용한 전략적 확장이 아니라, ‘솔루션이 문제를 찾아다니는전형적인 실패 사례였다. 엔트로피의 피벗은 전략적 재정렬이 아닌, 복잡성으로의 필사적인 도피였다. 피벗을 거듭할수록 제품은 더 복잡해지고 타겟 시장은 모호해졌으며, 실행해야 할 범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크립토 + AI 에이전트라는 버즈워드 조합은 투자자의 관심을 끌었을지 몰라도, 실제 고객의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초기 스타트업에게는 넓게 확장하는 능력보다 문제를 작게 정의하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좋은 사업' '벤처 스케일 사업'은 다른 질문이다

엔트로피 창업자가 4년과 360억 원을 모두 소진한 뒤에야벤처 스케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고백한 것은 이 이야기에서 가장 뼈아픈 교훈이다. 왜 이 질문을 가장 먼저 던지지 않았을까?

 

많은 창업자들이제품 피드백비즈니스 모델 검증을 혼동한다. “이거 쓸 것 같아요?”라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이거 얼마에 살 거예요? 언제 예산이 있어요? 의사결정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은 회사의 운명을 결정한다. 엔트로피는 제품 개발에는 집중했지만, 이 결정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은 미뤄둔 것이다.

 

특히 a16z와 같은 대형 VC로부터 투자를 받는 순간, 스타트업은꾸준히 성장하는 좋은 회사가 아닌폭발적으로 성장해야 하는 회사라는 단 하나의 시나리오에 묶이게 된다.

 

"2,500만 달러 시드를 받았다는 것은, 최소 2.5억에서 25억 달러 규모의 엑싯을 목표로 해야 한다는 의미다." 모든 좋은 아이디어가 이런 수백 배의 성장을 담보하는 벤처 스케일 비즈니스는 아니다. 여기에 2025년 암호화폐 벤처 투자가 전년 대비 약 60% 급감하는 시장 한파가 닥쳤다. 자본이 얼어붙으면, 엔트로피처럼 장기적인 연구개발이 필요한 인프라 프로젝트는 가장 먼저 생존의 위협을 받는다.

 

“이 사업은 좋은 비즈니스인가?”이 사업은 벤처 스케일 비즈니스인가?”는 전혀 다른 질문이다.

 

시장은 유일한 심판이다

엔트로피의 실패는 세 가지 진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첫째, 신뢰가 지배하는 시장에서는 기술적 우위만으로 이길 수 없다. 둘째, 피벗은 더 큰 비전으로의 도피가 아니라 더 정확한 문제 정의여야 한다. 셋째, ‘벤처 스케일이 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인지에 대한 검증은 가장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기술적 우아함이나 화려한 버즈워드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오직 시장만이 스타트업의 가치를 판단하는 유일하고 냉혹한 심판이다.

 

"시장은 당신의 비전에 박수치지 않는다. 시장은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그 해결책이 돈을 낼 만큼 가치 있을 때만 반응한다."

 

이 글을 읽는 예비 창업자들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당신은 지금 기술을 만들고 있는가, 아니면 고객이 기꺼이 돈을 내고 살 만큼 가치 있는 것을 만들고 있는가? 그 답에 당신의 미래가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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