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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왜 스스로의 반도체 공급망을 파괴했나?

AI독립군 2025. 11. 27. 12:14

유럽은 왜 스스로의 반도체 공급망을 파괴했나?

-넥스페리아 사태가 남긴 3가지 교훈-

  

역설적인 움직임

전 세계가 '반도체 자립'과 공급망 안보를 외치는 지금, 유럽의 최근 행보는 하나의 역설을 보여준다. 반도체 자국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네덜란드 정부의 넥스페리아(Nexperia)에 대한 조치가 의도와는 정반대로 즉각적인 공급 위기를 촉발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넥스페리아 사태가 우리에게 던지는, 전략적 안보와 경제적 안정성 사이의 복잡한 균형에 관한 놀랍고도 중요한 3가지 교훈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자 한다.

 

'자급자족'을 위한 조치가 오히려 '공급망 대란'을 일으켰다

네덜란드 정부의 넥스페리아 장악은 반도체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조치였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유럽이 스스로 자신의 공급망을 끊어버리는 첫 번째 사례가 된 것이다. 넥스페리아는 모든 ECU(전자제어장치)에 필요한 저사양·대량생산 이산소자 및 로직 반도체를 공급하며 유럽 자동차 산업의 심장부와 같은 역할을 해왔기에 그 충격은 즉각적이었다. 유럽의 핵심 산업이 멈춰서는 동안, 중국과 대만 등 아시아의 경쟁국들은 유럽의 물량을 차지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넥스페리아의 공급망 모델은 "유럽에서 웨이퍼를 생산하고, 중국에서 패키징한다"는 단순한 구조였다. 그러나 네덜란드 정부의 조치로 유럽에서 중국으로 향하던 웨이퍼 선적이 동결되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은 둥관 공장에서 생산된 완제품의 유럽 수출을 제한했다. 결국 유럽의 핵심 산업을 지키려던 조치가 오히려 중국의 결정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이미 취약해진 산업 및 자동차 기반을 더욱 약화시키는 자충수가 되었다.

 

유럽은 스스로의 공급망을 가장 먼저 차단함으로써, 이미 취약한 경쟁력 속에서 중국의 의사결정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자국의 산업 및 자동차 기반을 약화시켰다.

 

기술 유출 위협은 실재했지만, 대응의 순서가 틀렸다

네덜란드 정부의 우려가 전혀 근거 없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진단이 아니라 대응의 순서였다. 넥스페리아의 모회사인 윙테크(Wingtech)가 제기하는 기술 유출 위협은 분명 실재했다. 윙테크는 다음과 같은 계획을 통해 유럽 법인을 약화시키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U 직원 약 40% 감축

• 독일 뮌헨 R&D 센터 폐쇄

• 독일 함부르크와 영국 공장의 장비 이전

• 특허 및 노하우의 중국 이전

• 윙테크 CEO가 자신과 관련된 상하이의 한 기업에 넥스페리아가 과도한 규모의 웨이퍼 주문을 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등 생산 능력, 재무 자원, 지적 재산(IP)의 부적절한 이전

 

이는 모든 정부가 직면하는 핵심적인 딜레마를 보여준다. 장기적인 전략적 위협에 대응하는 것과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경제적 피해를 감수하는 것 사이의 선택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행동에 나설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방식은 재앙적인 결과를 낳았다.

 

과거의 실패 사례가 있었지만, 교훈을 잘못 적용했다

유럽이 이러한 딜레마에 직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스웨덴의 MEMS(미세전자기계시스템) 전문 파운드리 기업인 실렉스 마이크로시스템즈(Silex Microsystems) 사례가 대표적이다. 실렉스는 중국계 기업에 인수된 후, '전형적인 역외 이전 전략'을 구사했다. 스웨덴 법인은 R&D 및 소량 개발 기지로 유지하고, 대량 생산은 비용 최적화와 통제력 강화를 위해 베이징에 설립한 복제 공장으로 이전하는 방식이었다.

 

수년 동안 스웨덴 규제 당국은 이러한 MEMS 기술 이전에 대한 수출 허가를 내주며 사실상 이를 방치했다. 그러나 인수 5년 후, 당국은 뒤늦게 이것이 단순한 생산 이전이 아니라 중국의 독자적인 MEMS 역량 확보를 위한 체계적인 기술 복제임을 깨닫고 수출을 금지했다. 그때는 이미 핵심 지식과 공정 대부분이 중국으로 넘어간 후였다. 넥스페리아 사태는 이와 정반대의 교훈을 준다. , 실렉스가 너무 오래 기다려서 치른 대가를 보여준다면, 넥스페리아는 계획 없이 서두를 때 치르는 대가를 보여준다.

 

실렉스는 기다림의 대가를 보여주었다. 넥스페리아는 서두름의 대가를 보여준다. 둘 다 나쁜 결과이다.

 

타이밍과 준비에 대한 배우지 못한 교훈

결론적으로 넥스페리아 사태는 전략적 우려가 타당하더라도, 실행 방식이 잘못되면 의도와 정반대의 자해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올바른 접근법은 고객들이 대체 공급업체를 확보할 시간을 준 후, 단계적으로 전환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중국과의 경쟁이라면, 그에 맞게 행동해야 했다. 공격을 가하기 전에 우위를 점하고, 여러 라운드를 버틸 체력을 길러야 한다. 상대의 반격을 예상하고 대응할 준비를 마친 뒤, 그들의 시간이 아닌 '나의 시간'에 움직여야 한다. 실렉스와 넥스페리아 사례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결단력보다 시점이 더 중요하며', '준비 없는 서두름은 기다리는 것보다 나쁘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각국 정부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면서도 넥스페리아와 실렉스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을, 신중함과 과감함 사이의 어려운 균형점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까? 이는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중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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