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팍다식 & 경제/신재생에너지(스타트업)

배터리 혁명이 여는 주거 전기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AI독립군 2025. 11. 6. 10:12

배터리 혁명이 여는 주거 전기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가스레인지를 전기레인지로 바꾸는 일이 왜 어려운가? 답은 간단하다. 벽을 뜯어내고 전선을 새로 깔고 분전반을 업그레이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기기 교체가 아니라 건설 프로젝트에 가깝다. 특히 100세대가 사는 아파트 단지라면 비용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난다. 이것이 바로 주거 공간의 전기화가 전기차나 전동공구보다 훨씬 더디게 진행되어온 근본 원인이다.

 

MIT 출신 창업가 샘 칼리쉬가 설립한 스타트업 Copper는 이 문제를 배터리라는 단 하나의 솔루션으로 해결했다. 120볼트 일반 콘센트에 꽂기만 하면 작동하는 인덕션 레인지다.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내장하여 전기 요금이 저렴하고 청정한 시간대에 충전해두었다가 요리할 때 전력을 공급한다. 가스레인지에는 오븐 조명이나 시계, 전기 점화장치를 위한 콘센트가 이미 있기 때문에 추가 공사 없이 냉장고나 식기세척기를 교체하듯 설치할 수 있다.

 

스타트업이 보여준 시장 진입 전략의 정석

Copper의 사례는 클린테크 스타트업이 어떻게 시장 진입 장벽을 우회하는지를 보여주는 교과서다. 첫째, 고객의 가장 큰 페인포인트인 '설치 비용과 복잡성'을 제거했다. 둘째, B2B 시장부터 공략했다. 이미 1,000대를 출하했고, 그 대부분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업자와 소유주들이다. 뉴욕시 주택국과는 최소 1만 세대 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전형적인 스타트업의 성공 공식이다. 개인 소비자 대상으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붓는 대신, 대량 구매가 가능한 B2B 고객을 확보하여 초기 생산 규모를 키우고 단가를 낮춘다.

 

셋째, 단순한 제품 판매를 넘어 비즈니스 모델을 진화시켰다. 설치된 배터리들은 분산형 에너지 자산이 된다. Copper는 캘리포니아에서 파일럿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전력 수요가 급증할 때 가정의 배터리에서 전력망으로 깨끗한 전기를 공급하는 모델을 실증했다. 가스 발전소를 가동하는 대신 가정의 배터리를 활용하는 것이다. 이 수익은 다시 전기화 비용을 낮추는 데 재투자된다. 이는 'Product-as-a-Service'를 넘어 'Product-as-a-Grid-Asset'이라는 새로운 개념이다.

 

배터리 가격 하락이 만든 구조적 기회

리튬이온 배터리 가격은 1991년 상용화 이후 97% 하락했다. 이는 단순한 가격 하락이 아니라 산업 구조 자체의 변화다. 스마트폰부터 드론, 로봇,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전기 제품의 제조 공정이 배터리, 전기모터, 전력전자, 칩이라는 동일한 전기 기술 스택으로 수렴하고 있다. 이 스택을 장악한 국가가 제조업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하게 된다.

 

칼리쉬가 주방 레인지부터 시작한 이유는 전략적이다. 주방 레인지의 피크 전력 소비는 가정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피크를 평탄화하면 전체 전력망에 큰 이득이 된다. 게다가 레인지는 상징성이 있다. 사람들이 매일 모여 요리하는 공간이며, 온수기보다 훨씬 더 애착을 갖는 제품이다. 5kWh 배터리를 탑재한 Copper의 인덕션 레인지는 가스레인지보다 빠르게 가열되고 정밀한 온도 제어가 가능하며, 정전 시에도 작동한다.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의 미래

칼리쉬는 미국이 회복탄력적인 에너지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대량의 배터리가 필요하지만, 전력 송전 및 규제 한계 때문에 모든 배터리를 전력망에 설치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인터넷의 비유를 든다. 인터넷이 수백만 배 많은 정보를 전송하기 위해 수백만 배 많은 케이블을 깐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 전체에 로컬 저장소와 캐싱을 추가하여 처리량을 늘렸다. 전력망도 마찬가지다.

 

올여름 Copper 2,800만 달러를 조달하여 생산을 확대했고, 다른 가전제품 제조업체에 기술 라이선싱을 추진 중이다. 이는 혁신의 확산 속도를 높이는 현명한 전략이다. 독점보다는 생태계 확장을 선택한 것이다.

 

스타트업 운영자에게 주는 교훈

Copper 사례에서 도출할 수 있는 즉시 적용 가능한 인사이트는 명확하다.

첫째, 기술 혁신만으로는 부족하다. 고객의 가장 큰 채택 장벽을 제거하는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필수다.

둘째, 초기 시장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B2B부터 시작하여 규모를 키운 후 B2C로 확장하는 전략이 자본 효율적이다.

셋째, 제품을 팔되 플랫폼을 구축하라. Copper는 가전제품 회사가 아니라 에너지 회사다. 제품은 네트워크 효과를 창출하는 노드에 불과하다.

넷째, 정책과 규제를 이해하고 활용하라. 칼리쉬는 박사 과정 후 Rewiring America라는 비영리단체를 설립하여 전기화를 옹호했고, 인플레이션 감축법 제정에도 참여했다. 이는 시장을 만드는 일이다.

다섯째, 기술 스택의 수렴을 주시하라. 산업 간 경계가 무너지고 있으며, 이는 새로운 기회의 원천이다.

 

기후 기술은 더 이상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온도 조절기를 낮추고 지구를 위해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더 나은 기술을 채택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차세대 기후 영향의 본질이며, 스타트업이 공략해야 할 진정한 시장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