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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M 공급망 공격 사태] 스타트업, '신뢰' 너머 '경계'의 시대가 도래했다

AI독립군 2025. 9. 10. 08:28

[NPM 공급망 공격 사태] 스타트업, '신뢰' 너머 '경계'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난 9 8, 전 세계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뒤흔든 NPM(Node Package Manager) 공급망 공격 사건은 현대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 특히 혁신을 꿈꾸는 예비 창업자와 스타트업 운영자들에게 심각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주간 26억 회 이상의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18개의 핵심 패키지가 단 한 통의 피싱 이메일로 감염되며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공급망 공격"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이는 단순한 기술적 결함을 넘어,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던 디지털 인프라의 숨겨진 취약성과 인간이라는 가장 연약한 고리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오픈소스 생태계: 축복인가, 모래성인가?

NPM은 약 1,700만 개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가 의존하는 다재다능한 오픈소스 패키지 관리자이다. 스타트업에게 오픈소스는 바퀴를 다시 발명할 필요 없이 빠른 개발과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축복과 같다. 그러나 이러한 상호의존성이라는 구조는 단 한 명의 개발자 계정 손상으로 전 세계 수백만 개의 애플리케이션이 디지털 전염병처럼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취약성을 내포한다.

 

특히 개발자가 직접 설치하지 않아도 다른 패키지를 통해 자동으로 포함되는 '전이적 종속성(transitive dependencies)'은 개발자가 인지하지 못한 채 광범위한 파급 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 연구에 따르면 NPM 생태계 패키지의 42.7% 2년 이상 업데이트되지 않았으며, 절반 가까운 종속성이 구버전 상태에 있어 보안 취약점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는 오픈소스의 편리함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이면에 잠재된 구조적 위험을 간과해왔던 것이다.

 

기술의 이면, '인간'이라는 가장 약한 고리

이번 공격의 발단은 놀랍도록 단순했다. NPM 패키지 관리자 조쉬 주논(Josh Junon) "npmjs.help"라는 가짜 도메인에서 온 정교하게 위장된 2단계 인증(2FA) 재설정 피싱 이메일에 속아 자신의 계정 정보를 노출시켰다. 주논 개발자는 "스트레스가 많은 한 주였다"고 언급하며, 개발자의 스트레스나 피로도가 보안 의식 저하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이는 아무리 견고한 기술적 방어 체계를 갖추더라도 결국 '사람'이라는 요소가 가장 취약한 고리가 될 수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밤샘과 번아웃을 미덕처럼 여기는 스타트업 문화 속에서, 우리 팀의 에이스 개발자가 바로 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공격자들은 탈취한 계정을 통해 debug, chalk를 포함한 18개의 핵심 패키지에 암호화폐 지갑 탈취 코드를 삽입했는데, 이 코드는 브라우저 환경에서 MetaMask 등의 지갑과 상호작용하여 거래를 공격자의 주소로 우회시키는 정교한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 교묘한 것은 Levenshtein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블록체인 주소를 시각적으로 유사한 공격자 주소로 교체하는 기능이었다.

 

한국 스타트업, '빠른 성장' '보안' 사이의 딜레마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이번 사건의 함의는 특히 심각하다. 빠른 개발과 출시를 우선시하는 스타트업 문화에서 보안은 종종 후순위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타트업의 57%가 주간 단위로 피싱 공격에 노출되고 있으며, 85.9%의 프로젝트가 기여도 조작 공격에 취약한 상태다.

 

특히 핀테크, 블록체인, 이커머스 분야의 스타트업들은 암호화폐 관련 피싱 공격이 257% 증가한 현실에서 더욱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2024년 암호화폐 관련 피싱 공격으로 인한 전 세계 손실이 18억 달러에 달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보안은 더 이상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인프라임을 인식해야 한다.

 

생존을 위한 실전 보안 전략: '신뢰' 너머 '경계'의 시작

다행히 이번 공격은 NPM 팀이 악성 버전을 삭제하는 등 신속하게 대응하여 큰 피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는 운이 좋았을 뿐, 과거 2022년에도 인기 코딩 라이브러리 개발자의 의도치 않은 손상으로 수만 개의 소프트웨어 프로젝트가 마비되는 사태가 발생한 전례가 있다. 따라서 스타트업은 보안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1. '묻지마 설치' 시대의 종말: 의존성 감시자로 변모하라. 오픈소스 라이브러리와 패키지는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SBOM(Software Bill of Materials) 기반의 실시간 취약점 모니터링 및 의존성 스캐닝 자동화 도구(npm audit, Snyk )를 개발 파이프라인에 의무적으로 통합해야 한다. 특정 버전의 패키지만을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버전 고정(version pinning)'은 이제 기본 중의 기본이다. 또한 패키지 무결성 확인을 위한 코드 서명 검증 프로세스 도입도 필수적이다.

 

2. '인간'이라는 약점을 강점으로: 강력한 보안 문화 구축. 모든 개발 계정 및 클라우드 서비스에 2단계 인증(MFA)을 전면 도입하고, 하드웨어 보안 키와 같은 강력한 다중 인증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또한 전 직원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피싱 시뮬레이션을 포함한 사이버보안 교육을 실시하여 인간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보안 의식을 높여야 한다. 개발자들의 업무 스트레스와 피로도는 보안 사고의 잠재적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적절한 휴식과 건강 관리를 지원하는 것 또한 장기적인 보안 강화에 기여한다.

 

3. '신뢰하지 않고 검증한다': 제로 트러스트 아키텍처. 스타트업의 보안은 수많은 외부 서비스, API, 라이브러리 등 공급망 전체의 보안 수준에 좌우된다. 따라서 '제로 트러스트(Zero Trust)' 원칙 하에 "신뢰하지 않고 검증한다"는 원칙으로 모든 외부 의존성과 내부 시스템에 대한 엄격한 검증을 기반으로 하는 보안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핵심 자산을 식별하고 집중적으로 보호하는 리스크 기반 우선순위 전략, 신속한 위기 대응을 위한 명확한 에스컬레이션 프로세스를 포함하는 사고 대응 체계 및 정기적인 백업 및 복구 테스트도 필수적이다. 주요 서비스 제공업체에 대한 정기적 보안 감사와 금전적 손실 최소화를 위한 사이버 보험 가입 또한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AI 기반 이상 행위 탐지 시스템을 도입한 실시간 위협 인텔리전스 시스템 구축은 고도화된 전략이 될 수 있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보안 내재화

이번 NPM 공급망 공격 사건은 "빠른 성장 vs 보안 강화"라는 스타트업의 영원한 딜레마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보안은 더 이상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필수 인프라이다.

 

특히 한국의 규제 환경과 글로벌 확장을 고려할 때, 초기 단계부터 'Security by Design'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비용 효율적이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스타트업 전용 보안 가이드라인 마련 및 중소기업을 위한 사이버보안 지원 프로그램 확대를 모색해야 한다.

 

2시간 만에 발견되고 차단된 이번 공격이 큰 피해로 이어지지 않은 것은 오픈소스 커뮤니티의 신속한 대응 덕분이었다. 이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도 이러한 협력적 보안 문화를 구축하고, 디지털 변혁 시대에 사이버 리질리언스(Cyber Resilience)를 핵심 경쟁력으로 인식하고 투자해야 할 때이다.

 

진정한 혁신은 단순히 빠르게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단단하고, 신뢰할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능력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오픈소스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서 더 멀리 보기 위해서는, 그 어깨가 썩어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살피는 경계의 눈을 갖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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