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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계의 옐프' abillion은 왜 멈춰야 했나

AI독립군 2026. 4. 10. 09:11

'비건계의 옐프' abillion은 왜 멈춰야 했나

-1,700만 달러의 투자와 100만 명의 팬-

 

지속 가능한 소비를 꿈꿨던 야심찬 도전의 끝

지속 가능한 소비를 쉽고 사회적인 경험으로 바꾸고자 했던 싱가포르 기반의 스타트업 ‘abillion’ 8년 간의 여정을 뒤로하고 지난주 서비스 종료를 선언했다. 2018년 비카스 가르그(Vikas Garg)가 창업한 이 서비스는 비건 음식을 찾는 과정에서 겪은 지극히 개인적인 좌절감에서 시작되었다. 수요는 분명 존재하지만, 정작 원하는 정보를 찾기 위해 탐정 수준의 검색을 반복해야 하는 '발견(Discovery)의 결핍'을 해결하는 것이 이들의 본질적인 과제였다.

 

abillion은 서비스 종료 직전까지 역대 최고의 지표를 경신하고 있었다. 1,700만 달러라는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 100만 명 이상의 팬을 확보했으며, 누적 기부금 280만 달러를 기록하며 사회적 가치까지 증명해 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지표가 정점에 달했던 순간, 이들은 추가 투자 유치에 실패하며 무너졌다. 최고의 성적을 내고도 왜 벤처 캐피털(VC)로부터 외면 받았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실패 사례를 넘어, AI 시대와 벤처 자본의 생리를 관통하는 세 가지 결정적인 교훈을 남긴다.

 

AI가 발견(Discovery) 계층을 평면화하고 있다

abillion의 핵심 가치는 '큐레이션'이었다. 사용자가 앱을 열어 비건 메뉴를 찾고 리뷰를 읽으며 실패 없는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것은 강력한 진입점(Wedge)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의 폭발적인 성장은 독립형 큐레이션 앱의 방어력을 근본적으로 약화시켰다.

 

사용자들은 이제 정보를 찾기 위해 특정 앱에 진입해 검색을 반복하지 않는다. AI에게 질문 한 번으로 정답을 얻는 시대에, abillion이 제공하던 정보의 가치는 더 이상 독점적인 경쟁력이 아니다. AI는 현재 발견 계층(Discovery Layer) '평면화(Flattening)'하고 있다.

 

무엇을 먹고, 어떤 브랜드를 믿을지에 대한 답변이 AI 엔진으로 통합되면서, 발견 그 자체가 목적이었던 독립 서비스들은 거대한 흐름 앞에 생존력을 잃었다. 큐레이션에 의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AI에 의해 가장 먼저 잠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핵심 모델의 성숙보다 빨랐던 무리한 확장

abillion의 비극은 날카롭게 다듬어진 하나의 성공 모델을 만드는 대신, 절반만 증명된 다섯 개의 비즈니스 모델을 동시에 관리하려 했다는 점에 있다. 이들은 비건 음식 리뷰에서 시작해 크루얼티 프리 뷰티, 패션, 가공식품으로 대상을 넓혔고, 이후 다음과 같은 층위를 쉼 없이 쌓아 올렸다.

  • 소셜 미디어인스타그램 스타일의 사회적 포스팅 기능
  • SaaS 솔루션브랜드의 리스팅 관리 및 마케팅 분석 도구
  • P2P 마켓플레이스중고 및 수제 제품 거래 시장 (싱가포르 중심)
  • 커뮤니티 지분 소유사용자 기여도를 지분으로 전환하는 구조

여기서 결정적인 전략적 패착이 드러난다. 수익원을 겹쳐 쌓는 것(Layering revenue streams)과 해결되지 않은 사업들을 쌓아 올리는 것(Piling on unresolved businesses)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제품의 층위가 많아질수록 실행의 난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고, 조직의 역량은 분산되었다. 예리한 칼날 하나가 필요한 시점에 이들은 조립되지 않은 맥가이버 칼을 들고 있었던 셈이다. 

 

강력한 미션이 반드시 벤처 규모의 경제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abillion은 사용자가 리뷰를 올리면 기부금을 적립해주고, 이를 자선 단체에 전달하는 '강력한 도덕적 루프'를 구축했다. 또한 290명의 멤버로부터 50만 달러 이상의 커뮤니티 투자를 끌어낼 만큼 지지층이 탄탄했다. 하지만 이러한 미션 중심의 성과가 벤처 캐피털이 요구하는 경제적 기대치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abillion 비즈니스 프로필]

  • 설립 및 기반: 2018, 싱가포르
  • 총 투자 유치액 1,700만 달러
  • 누적 다운로드: 100만 건 이상
  • 등록 비즈니스 수: 130만 개
  • SaaS 유료 고객사: 4,700개 이상
  • 누적 기부금 창출: 280만 달러 이상

4,700개 이상의 SaaS 고객사를 확보했다는 지표는 표면적으로 훌륭해 보이지만, 1,700만 달러의 투자금을 감당하기엔 수익의 질(Quality of Revenue)이 낮았음을 시사한다. SaaS 구독료와 거래 수수료라는 평범한 수익 구조는 벤처 규모의 폭발적인 성장을 증명하기에 너무나 느슨했다.

 

280만 달러의 기부금을 만들어내는 '도덕적 루프'는 강력했으나, 1,700만 달러의 자본을 회수하고 수익을 낼 '비즈니스 루프'는 그만큼 정교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미션에 열광할지언정, 벤처 규모의 경제성을 지탱할 만큼 자주, 그리고 충분히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다.

 

미션 중심 스타트업이 살아남기 위한 다음 질문

abillion의 종료는 발견 계층에서 사업을 구축하려는 창업자들에게 뼈아픈 교훈을 남긴다. 제품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하거나 커머스 레이어를 얹는다고 해서 본질적으로 약한 수익 구조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특히 AI가 발견의 과정을 흡수하고 있는 현재, 단순한 정보 큐레이션은 더 이상 강력한 진입장벽이 될 수 없다.

 

이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를 꿈꾸는 이들은 스스로에게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우리 서비스는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에서 '누가, , 얼마를 지불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는가?" 미션은 사용자를 모으는 강력한 자석이 될 수 있지만, 그들을 비즈니스 생태계 안에 묶어두고 지속 가능한 수익을 창출하게 만드는 것은 냉혹하리 만큼 정교하게 설계된 경제적 루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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